부여 왕릉원
💡 부여 왕릉원 Aha! 포인트
백제는 왜 왕의 무덤만 만들지 않고 그 곁에 왕을 위한 사찰까지 세웠을까?
📝 설명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봤다면, 이제 그 향로가 발견된 현장으로 이어가보세요. 부여 왕릉원은 사비시대인 538~660년 백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입니다. 사비도성을 둘러싼 나성의 동쪽 바깥, 산의 남쪽 비탈에 자리하며 2015년 관북리 유적·부소산성·정림사지·나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등재됐습니다.
먼저 중앙의 봉분들을 세어보세요. 앞줄 3기, 뒷줄 3기가 놓여 있고, 그보다 북쪽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비슷한 둥근 무덤이지만 내부는 모두 같지 않습니다. 조사 결과 모두 입구와 통로를 통해 돌방으로 들어가는 굴식돌방무덤 계통이지만, 천장은 볼트형에서 육각형·사각형 평천장으로 변화합니다. 무덤을 차례로 비교하면 백제 왕릉을 만드는 기술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1호분인 동하총은 꼭 기억해두세요. 네 벽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신도, 천장에는 연꽃과 구름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무덤은 단순히 시신을 넣는 돌방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보호하고 사후세계를 표현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문화적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여 왕릉원의 가장 큰 반전은 무덤 옆 계곡에 있습니다. 왕릉과 나성 사이에서 왕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왕실사찰로 보는 능산리사지가 발견됐습니다. 1993년 이 절터에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됐고, 1995년에는 목탑터에서 국보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견됐습니다. 사리감 명문에는 창왕 13년, 567년이라는 연대가 남아 있어 이 사찰이 왕실 주도로 조성됐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백제금동대향로는 박물관의 아름다운 공예품으로만 보면 절반만 본 것입니다. 왕릉 옆 왕실사찰에서 실제 사용됐던 의례용 향로라는 출토장소까지 연결해야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집니다. 왕이 죽으면 왕릉에 묻고, 그 곁에 절을 세워 명복을 빌었던 백제 왕실의 장례와 추모 방식이 하나의 공간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변 지형도 함께 살펴보세요. 왕릉은 산이 뒤를 감싸는 남향 비탈에 놓이고, 바로 서쪽에는 사비도성을 둘러싼 부여 나성이 지나갑니다. 즉 사비도성 안에는 왕궁과 사찰이, 성 밖에는 왕릉과 왕실사찰이 배치됐습니다. 왕릉원은 무덤 몇 기만 보는 곳이 아니라 도성 → 나성 → 왕릉 → 능산리사지가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읽는 장소입니다.
꼭 봐야 할 것
앞·뒤 두 줄과 뒤쪽 1기로 이루어진 중앙 7기 왕릉
무덤마다 다른 돌방과 천장 구조
1호분 동하총의 사신도·연꽃·구름무늬
왕릉과 나성 사이의 능산리사지
백제금동대향로 출토지
567년을 알려주는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왕릉원 바로 옆을 지나는 부여 나성
관람안내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관람시간: 3~10월 09:00~18:00 / 11~2월 09:00~17:00
입장료: 성인 1,000원 / 청소년 600원 / 어린이 400원
65세 이상: 무료
주차: 무료
문의: 부여왕릉원 매표소 041-830-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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