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왕릉원 — 일곱 개의 왕릉과 능산리사지에서 사비백제 왕실의 죽음과 기억을 만나는 곳부여 왕릉원길찾기
💡 오늘의 Aha!Q
“부여 나성은 백제의 수도 **사비도성의 바깥 경계를 이루던 외곽성**입니다. 부소산성에서 시작해 도시의 북쪽과 동쪽을 감싸며 이어졌고, 서쪽과 남쪽은 금강과 자연제방이 방어선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동쪽에는
산 사이로 넓은 평지가 열려 있어
적이 접근하기 쉬웠기 때문에
인공적인 성벽이 필요했습니다.
현재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나성 구간은 약 6.3km이며,
북나성과 동나성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나성의 역할은
적을 막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벽을 기준으로
왕궁과 사람들이 사는 도성 안
과
왕릉과 바깥지역
이 구분됐습니다.
실제로 부여 왕릉원은
나성의 동쪽 바깥에 자리합니다.
그래서 왕릉원에서 나성을 함께 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도시”
와
“죽은 왕들의 공간”
을 백제 사람들이 어떻게 나누었는지
지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성은
화려한 성문이나 높은 석벽보다
숲과 들판 사이의 낮은 흙둔덕처럼 보이는 구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핵심은
성벽 자체를 보는 것보다
“여기까지가 백제의 수도였다”
라는 도시의 경계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꼭 해볼 것
- 왕릉원에서 나성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 나성 안쪽과 바깥쪽의 지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세요.
- 길 옆의 자연언덕과 사람이 쌓은 듯한 흙둔덕을 구분해보세요.
- 부소산성에서 시작한 성벽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졌을지 지도와 실제 지형을 함께 보세요.
- 서쪽의 금강과 동쪽의 나성을 비교해 자연방어선과 인공방어선을 구분해보세요.
AhaQ!
- 강이 있는 서쪽과 평지가 열린 동쪽 중 어느 쪽에 성벽이 더 필요했을까요?
- 높은 돌성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성벽도 도시를 지킬 수 있었을까요?
- 왕릉원이 나성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나성 위에 섰다고 생각하면 어느 쪽이 백제 수도 안쪽일까요?
- 지금 성벽이 거의 보이지 않아도 옛 도시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을까요?
나성은 적을 막는 성벽이었을까요, 아니면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백제의 수도”라고 알려주는 도시의 경계선이기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