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대 — 문무왕의 바다를 바라보며 ‘평화를 만드는 피리’ 이야기를 만나는 전망대 심층 탐험

이견대 — 문무왕의 바다를 바라보며 ‘평화를 만드는 피리’ 이야기를 만나는 전망대 심층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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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할 사이트 6

아래 순서는 추천 동선이에요. 가까운 곳·원하는 곳부터 자유롭게 방문해 스탬프를 모으면 됩니다.

  1. 1만파식적 — 왜 ‘피리 하나’가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고 믿었을까?심층

    『삼국유사』에는 신문왕이 즉위한 뒤 동해에서 신비한 대나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감은사 앞바다에 작은 산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에는 다시 하나가 되는 대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문왕이 그 이유를 묻자 바다의 용은 한 손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이 합쳐져야 소리가 난다**는 뜻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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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이견대의 전망 — 왜 이 이야기는 바로 ‘이 자리’에서 전해졌을까?심층

    만파식적 이야기는 경주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왜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이곳과 연결됐을까요? 이견대에 올라서면 동해와 문무대왕릉 방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뒤쪽으로는 감은사지와 연결되는 대종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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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바다의 왕릉 — 문무왕은 왜 거대한 봉분 대신 동해를 선택했을까?심층

    문무왕은 신라 제30대 왕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과의 전쟁을 거치며 삼국통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뒤의 모습은 대릉원 왕릉과 크게 다릅니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는 뜻의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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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용이 된 문무왕 — 왜 사람들은 왕이 죽은 뒤에도 나라를 지킨다고 이야기했을까?심층

    문무왕은 나라를 통일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신라에는 새로운 질서를 안정시키고 외부의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무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는 왕으로 기억됩니다.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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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왕암 — 정말 바위 속에 문무왕의 무덤이 있을까?심층

    대왕암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작은 바위섬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여러 자연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부에는 바위들이 둘러싼 공간이 있습니다. 바위 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구조도 보입니다. 과거 조사에서는 이곳이 일반적인 석실분처럼 왕의 시신을 넣는 무덤방 구조인지 여부를 두고 여러 견해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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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문무대왕릉 일출 — 해가 뜨면 ‘바다의 왕릉’은 어떻게 달라질까?심층

    문무대왕릉은 **해돋이와 역사유적을 동시에 경험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해가 뜨기 전 봉길해변에 서면 대왕암은 바다 위의 검은 실루엣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바위와 바다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지만,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풍경이 단계적으로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