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Aha!Q
“서문에 서서 문 바깥과 성 안쪽을 번갈아 봅니다. 이곳은 단순히 적을 막는 벽이 아니라 전주 경기전의 왕실 유산을 피난시킬 공간의 입구였습니다. 왜 넓은 평지보다 산과 골짜기를 이용한 성을 계획했을까요?”
위봉산성은 1675년 숙종 때 축성한 것으로 완주군은 소개합니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산성은 골짜기를 감싸는 포곡식 석성입니다. 성문 자리뿐 아니라 암문, 지휘 시설, 포루 자리 등 방어에 필요한 시설의 흔적이 기록돼 있습니다. 지금 서문에서 그 모든 유구를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주 경기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입니다. 전쟁이나 소요가 발생하면 어진과 왕실의 위패를 산성 안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완주군 자료는 동학농민혁명 때 실제로 이를 성 안에 옮겼다고 설명합니다. 계획과 실행이 모두 있는 장소인 셈입니다.
서문에서는 돌벽만 자세히 보기보다 멀리 산줄기까지 함께 봅니다. 자연 비탈을 방어에 쓰고 문을 통해 이동을 통제하면 넓은 성을 적은 인공 구조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남은 성벽과 문 주변의 모습에는 보수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모든 돌을 같은 시대의 원형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꼭 해볼 것
- 서문 앞뒤에서 어느 쪽이 성 안인지 안내판과 지형으로 확인합니다.
- 성벽이 산의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킵니다. 평지 성벽이었다면 달라졌을 점을 말해 봅니다.
- 현장 설명에서 축성 목적과 실제 어진 이동의 시점을 따로 찾아봅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장소를 정할 때 높은 벽 외에 어떤 조건이 필요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