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Aha!Q
“거북 모양 받침 위의 큰 돌에는 글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그린 그림 대신 긴 글을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요?”
대낭혜화상탑비는 무염 스님의 생애와 활동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탑비라는 말에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관련해 행적을 기록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절터의 층층이 쌓인 불탑과 사람의 삶을 기록한 탑비는 목적과 형태가 다릅니다.
무염은 801년에 태어나 888년에 입적한 신라 말 승려입니다.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귀국해 성주사에서 활동하며 성주산문의 중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절터가 단순히 큰 건물이 있던 장소를 넘어 사람과 가르침이 모였던 곳이라는 사실을 탑비의 기록이 알려줍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최치원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최인연입니다. 글의 내용을 만드는 일, 그것을 글씨로 옮기는 일, 돌에 새기는 일은 서로 다른 작업입니다. 약 5천여 자의 긴 기록에는 한 승려의 행적뿐 아니라 신라의 신분제와 당시 사회를 연구할 내용도 담겼습니다. 장식이 잘 보이지 않아도 글을 기록한 면 자체가 중요한 관람 대상인 이유입니다.
이 비문은 최치원의 사산비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네 산의 사찰과 인물에 관련된 비문을 묶어 부르는 이름으로, 돌에 남은 글이 문학과 역사 자료로 함께 읽히는 사례입니다. 비의 정확한 건립연대에는 다른 학설이 있으므로 890년을 확정 정답으로 삼지 않습니다. 무염의 생애와 비문을 지은 사람, 현재 남은 비석의 구조를 나누어 읽는 편이 발견이 많습니다.
비석의 받침을 귀부, 윗부분의 머릿돌을 이수라고 부릅니다. 귀부는 거북 형태의 받침이며, 이수에는 용과 관련한 장식이 나타납니다. 전문용어를 외우기 전에 받치는 부분·기록하는 부분·위에서 마무리하는 부분의 역할을 먼저 나누어보세요.
현장에서 작은 글자를 모두 읽기는 어렵습니다. 비석 표면에 가까이 붙거나 문지르지 말고 안내의 번역과 해설을 이용합니다. 번역에서 확인한 인물의 이름과 활동을 비석의 존재와 연결하면, 돌의 장식뿐 아니라 기록의 내용도 관찰한 셈이 됩니다.
꼭 해볼 것
- 귀부·비신·이수에 해당하는 세 부분을 눈으로 찾아 각각의 역할을 말합니다.
- 안내 번역에서 무염 스님의 활동 한 가지 또는 관련 인물 이름 하나를 찾습니다.
- 탑과 탑비를 비교해 형태와 기록 기능에서 다른 점을 하나씩 말합니다. 돌을 만지거나 글자 위에 종이를 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