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릉과 익릉 — 숙종과 세 왕비의 능은 왜 한 가지 모양으로 놓이지 않았을까?

💡 오늘의 Aha!Q

“명릉에는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이 있고 익릉에는 한 왕비의 봉분이 있다. 배치의 차이에는 어떤 시간이 담겼을까?”

명릉은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한 두 봉분의 쌍릉으로 배치됐고, 인원왕후는 다른 언덕에 단릉으로 놓였다. 같은 능역에서 언덕을 달리한 동원이강 형식을 살필 수 있다.

인현왕후는 1701년, 숙종은 1720년, 인원왕후는 1757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 능역의 세 봉분을 같은 날 만들어진 결과로 생각하면 배치에 담긴 시간을 놓친다. 왕과 왕비의 사망과 능 조성이 서로 다른 시기에 이뤄졌다.

익릉은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의 단릉이다. 명릉과 익릉을 나란히 비교하면 숙종의 왕비들을 모두 같은 언덕에 함께 모셨다는 설명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각 능의 인물과 배치를 확인해야 한다.

정자각은 제향을 위한 건물이다. 명릉에서는 하나의 제향 공간과 서로 다른 언덕의 관계를 안내도와 현장 시야로 읽어보자. 봉분이 보이는 정도는 나무와 관람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족은 인물 이름을 모두 외우기보다 ‘누구의 능인가, 봉분은 어떻게 놓였는가, 언제 더해졌는가’ 세 질문으로 관찰하면 좋다. 허용된 관람 위치에서 배치를 그리고 안내와 대조하면 왕실의 관계와 시간이 함께 보인다.

꼭 해볼 것

  • 명릉의 쌍릉과 다른 언덕의 단릉을 안내도에서 구분한다.
  • 1701·1720·1757년을 인물과 연결한다.
  • 익릉과 명릉의 봉분 배치를 간단한 그림으로 비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