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63 (법흥동)길찾기

심층 포인트

석주 이상룡

“99칸 종가를 두고 떠난 선택은 만주에서 어떤 일로 이어졌을까?”

꼭 해볼 것

  • 이상룡이 생활했을 종가의 규모를 직접 확인해 보세요.
  • 망명 전의 생활환경과 만주 생활을 비교해 보세요.
  • 전시·안내에서 1911년을 찾아보세요.

석주 이상룡은 이 큰 종가 임청각에서 태어났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이 상실되자 국내에서만 독립운동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1911년 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했습니다.

만주에서는 경학사 설립을 주도하고,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해 동포들의 정착과 독립군 양성을 위한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부민단, 한족회,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동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맡았습니다. 1932년 귀국하지 못한 채 만주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국외 거점에서는 동포의 생계를 위한 정착과 교육, 독립군 양성이 연결됐습니다. 임시정부의 국무령은 지금의 직함과 단순히 같은 말로 바꾸기보다 당시 제도 속 지위로 읽어야 합니다. 집의 규모와 떠난 뒤의 활동을 함께 보면 임청각은 부유한 집의 전시를 넘어 독립운동사의 장소가 됩니다.

🔒 인증샷은 인증 확인에만 쓰고 공개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