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 600년 동안 사람이 모인 서울의 길 심층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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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운종가 — 왜 600년 전에도 종로에 사람이 몰렸을까?심층

    조선시대 종로 중심부는 **운종가**라고 불렸습니다. ‘운종’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다는 뜻입니다. 서울시 역사자료에서도 운종가는 한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로 소개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겹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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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전과 육의전 — 조선에도 ‘핵심 상권’이 있었을까?심층

    운종가 주변에는 **시전**이라는 상점들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도성에 필요한 물건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설치·관리한 상업시설입니다. 그 가운데 규모가 크고 국가와의 관계가 특히 중요했던 상점을 흔히 **육의전**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비단·무명·명주·모시·종이·어물 등을 취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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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피맛골 — 넓은 종로를 두고 왜 좁은 길로 다녔을까?심층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울기록원은 종로의 큰길에서 백성들이 말을 탄 고관대작을 만나면 길가에 비켜 예의를 갖춰야 했고, 이런 불편과 말에 부딪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뒤쪽 좁은 길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길이 **피맛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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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보신각 — 종 하나가 어떻게 서울의 하루를 움직였을까?심층

    조선시대 한양 중심에는 종을 건 종루가 있었습니다. 서울문화포털은 종이 밤의 **인정** 때 28번, 새벽 **파루** 때 33번 울려 도성의 문을 닫고 열며 하루의 시간을 알렸다고 설명합니다. 종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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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탑골공원 — 왜 번화한 종로가 3·1운동의 무대가 되었을까?심층

    탑골공원은 조선시대 원각사터에 만들어진 근대 공원입니다. 현재는 **사적 서울 탑골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공원 안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비 같은 조선시대 문화유산도 남아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는 이곳에서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이 전개되며 3·1운동을 기억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왜 이곳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