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성당 — 세곡창고 터에서 130년 신앙의 언덕으로 심층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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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공세리 — 성당 이름에 왜 ‘세금’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심층

    공세리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국가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아두던 **공세곶창**, 즉 공세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산만 주변은 곡교천·삽교천·안성천이 바다로 연결되는 수운의 요지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지역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이곳에 모아 창고에 저장한 뒤 배를 이용해 서울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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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붉은 벽돌성당 — 왜 한옥 대신 고딕식 성당을 지었을까?심층

    공세리성당은 처음부터 현재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가 건립을 추진해 1922년에 완공했습니다. 중국인 기술자와 신자들의 노동으로 약 3년에 걸쳐 건축했다고 전하며, 내부는 두 줄의 기둥으로 나뉜 삼랑식이고 아치형 천장·창과 스테인드글라스를 갖춘 근대 고딕식 건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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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2위 순교자 — 왜 아름다운 성당이 ‘성지’이기도 할까?심층

    공세리성당의 중요한 정체성은 **순교성지**라는 점입니다. 천주교대전교구는 조선시대 이 지역과 관련된 32위 순교자를 기리는 곳으로 공세리성당을 소개합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 때문에 체포되고 심문과 형벌을 받았으며, 여러 지역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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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드비즈 신부와 이명래고약 — 성당에서 왜 약을 만들었을까?심층

    공세리성당의 역사에서 가장 의외의 이야기가 **이명래고약**과의 연결입니다. 아산시 자료에 따르면 드비즈 신부는 당시 피부질환과 종기로 고생하는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서양의학과 한방의 방법을 참고해 고약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곁에서 일하던 이명래가 제조법을 배웠고 이후 이를 발전시켜 널리 알려진 ‘이명래고약’으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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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보호수 — 성당보다 오래된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심층

    천주교대전교구는 공세리성당 안에 300년이 넘은 보호수들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들은 현재의 벽돌성당이 지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 언덕에 있었던 셈입니다. 현재 성당이 완공된 1922년뿐 아니라 그 이전의 한옥성당,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공세창과 포구의 시간까지 겹쳐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