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과 후대의 비석 — 한 왕릉에는 왜 서로 다른 시대가 남아 있을까요?

💡 오늘의 Aha!Q

“무덤의 주인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데 앞의 비석은 조선시대 기록입니다. 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능의 이야기는 계속 바뀌었을까요?”

경순왕은 935년 고려에 신라를 넘긴 뒤 고려 왕실의 예우를 받았고 97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라 왕릉들이 모인 경주와 달리 그의 능은 연천 고랑포 북쪽에 남아 있습니다. 운구를 경주로 옮기려다 고려 왕실이 막았다는 사연은 전해지는 이야기로 구분합니다.

지금 보이는 봉분과 석물, 비석이 모두 978년의 모습 그대로는 아닙니다. 국가유산 해설은 능이 한동안 잊혔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확인되고 정비된 과정을 소개합니다. 앞의 묘비에는 1747년 세운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묻힌 사람의 시대와 기억을 새긴 물건의 시대가 다른 셈입니다.

곡장은 봉분 뒤를 감싸는 낮은 담입니다. 고려 왕실이 왕의 격식을 갖추어 능을 조성한 특징으로 설명됩니다. 다만 관람자는 현장 구조와 안내를 통해 배울 뿐 돌의 색이나 풍화 정도만으로 어느 부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이 경순왕의 생애와 묘비의 건립연도를 각각 확인해보세요. 수백 년의 간격은 잊고 다시 찾고 기리는 사람들의 시간이 능에 더해졌음을 보여줍니다. 신라·고려·조선이라는 왕조 이름을 단순히 외우기보다 한 사람을 어느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기억했는지 살피는 관람입니다.

꼭 해볼 것

  • 왕이 세상을 떠난 시기와 묘비를 세운 시기를 구분해보세요.
  • 봉분·곡장·비석의 서로 다른 역할을 말해보세요.
  • 안내에서 역사 기록과 전해지는 사연을 나눠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