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Aha!Q
“한 학자의 이름을 기리는 곳에 강당과 숙소가 함께 있습니다. 기념을 학교의 활동으로 이어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옥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해 1572년 세워졌습니다. 이언적은 학문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회와 정치는 어떤 원리에 따라야 하는지를 고민한 성리학자였습니다. 그의 학문은 후대 영남지역 성리학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고, 경주시 공식 안내도 이언적의 학문이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의 서원은 단순히 유명한 사람의 기념관이 아니었습니다. 후배 학자들은 존경하는 선생의 학문을 배우고, 그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며,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와 학문의 계보를 이어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옥산서원에는 배우는 구인당 → 생활하는 동·서재 → 이언적을 모시는 체인묘
가 함께 있습니다.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 그의 초상화를 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계속 배우는 교육시스템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언적은 1491~1553년의 학자로, 서원은 그의 사후인 1572년에 세웠습니다. 실제 생활·학문의 독락당과 후대의 제향·교육 공간인 옥산서원은 시간과 기능이 다릅니다.
꼭 해볼 것
- 서원 안에서 이언적을 ‘공부하는 공간’과 ‘기리는 공간’을 각각 찾아보세요.
- 구인당과 체인묘 가운데 어느 건물이 더 안쪽에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 오늘날 학교에서 졸업한 뒤에도 오랫동안 기념하는 스승이나 학자가 있는지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