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Aha!Q
“두 탑 뒤에는 법당의 기단과 돌의 배열만 남았습니다. 남은 구조와 용이 드나든다는 전승은 어떻게 구분해서 읽을까요?”
감은사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동탑과 서탑이 마주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두 탑은 각각 높이 약 13.4m로, 통일신라 초기 석탑 가운데 규모가 큰 편입니다. 같은 형태의 삼층석탑을 좌우에 배치한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며, 이후 통일신라 사찰에서 두 탑을 금당 앞에 나란히 두는 형식이 널리 사용됩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탑 하나를 거대한 돌 한 덩어리로 깎은 것이 아니라, 큰 석재 여러 개를 가공해 기단·탑신·지붕돌을 조립한 구조라는 점이 보입니다. 두 탑 사이 중앙에 서서 좌우를 비교하면 높이와 비례가 거의 대칭처럼 맞아떨어지고, 뒤쪽 금당터까지 한눈에 들어와 당시 사찰의 중심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탑 뒤에는 금당터가 남아 있습니다. 목조건물은 사라졌지만 기단과 초석을 통해 원래 법당의 규모와 기둥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금당 바닥 아래에는 일반적인 법당과 다른 석조 공간이 조성돼 있어 감은사지만의 독특한 관람 포인트가 됩니다.
이 구조는 문무왕과 관련된 설화와도 연결됩니다.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이 죽은 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아들 신문왕이 그 뜻을 이어 감은사를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또한 용이 된 문무왕이 감은사에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 아래에 공간을 마련했다는 전승도 함께 전해집니다.
여기서 설화와 발굴유구는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금당 하부에 독특한 석조구조가 확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제 ‘용의 통로’였다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곳의 재미는 문헌 속 이야기와 실제 건축유구가 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점에 있습니다.
감은사라는 이름 역시 문무왕과 신문왕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이어 절을 완성했고, ‘감은(感恩)’이라는 이름도 부왕의 은혜와 뜻을 기리는 의미와 연결해 설명됩니다. 그래서 감은사지는 단순히 탑 두 기가 남은 절터가 아니라, 문무왕의 호국 의지와 신문왕의 계승, 통일신라의 불교건축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유적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682년 신문왕 때 완성한 감은사의 동·서 삼층석탑은 국보입니다. 이 심층은 문무대왕릉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선택 관람입니다. 독립 감은사지 사이트의 방문과 같은 현장 경험을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꼭 해볼 것
- 허용 관람길에서 두 탑과 금당터의 배치를 비교하세요.
- 금당 하부는 안내도와 개방된 조망에서 확인하고 구조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 실제 유구와 문헌의 용 전승을 각각 한 가지씩 말해보세요.
다른 포인트부터 탐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