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Aha!Q
“산비탈에 넓은 계단 같은 땅과 돌 축대가 남아 있습니다. 지붕과 기둥이 없는데 어디가 궁궐이었는지 무엇으로 알까요?”
삼별초는 고려 정부의 개경 환도 뒤인 1270년 항전을 이어가며 진도로 이동했습니다. 왕족 왕온을 왕으로 받들고 독자적인 정권을 세웠으며 용장성을 중요한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듬해 진도가 함락된 뒤 남은 세력은 제주로 옮겼습니다.
유적의 궁궐터는 산비탈을 층단으로 나누어 평지를 만든 구조입니다. 비탈 그대로는 큰 건물을 놓기 어렵기 때문에 축대를 세우고 흙을 다루어 건축할 자리를 확보했습니다. 서로 다른 높이의 단은 건물과 마당의 배치를 나누는 바탕이 됩니다.
발굴에서는 기와·청자 조각과 건물의 기초, 사찰 관련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2009~2010년 궁궐터 조사에서는 여러 건물이 치밀하게 배치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전쟁을 피해 급히 머문 야영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계획성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축성과 궁궐 조성의 정확한 시작에는 연구상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모든 시설을 삼별초가 진도에 도착한 뒤 한꺼번에 지었다고 단정하기보다 기존 공간과 계획·개축이 겹친 유적으로 읽습니다. 목조 건물이 사라져도 바닥의 돌과 층단은 공간의 질서를 전합니다.
가족은 안내도에서 건물 자리 하나를 골라 실제 터와 비교해보세요. 어디가 평평하고 어디가 높은지, 드나드는 길을 어디에 두었을지 눈으로 설명합니다. 지붕을 상상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남은 근거를 바탕으로 공간을 복원해보는 활동입니다.
꼭 해볼 것
- 낮은 층단에서 축대의 높이와 평지의 넓이를 비교해보세요.
- 안내도의 건물 자리와 실제 터에서 일치하는 단서를 하나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