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Aha!Q
“성문과 성벽을 걸으면 지금의 도시 안에 옛 경계가 나타납니다. 신라 수도 이후 경주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경주를 여행하면 대릉원·월성·황룡사지처럼 신라의 흔적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신라가 935년에 끝난 뒤에도 경주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수도라는 지위는 잃었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도시로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그 변화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가 경주읍성입니다.
신라시대 경주가 왕궁과 귀족의 거주지, 거대한 사찰이 넓게 펼쳐진 왕경이었다면, 고려와 조선의 경주는 관청과 주민의 생활공간을 성벽으로 둘러싼 읍성도시가 되었습니다.
경주읍성은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하며, 기록에는 1378년 고려 우왕 때 성을 다시 고쳐 쌓은 사실이 나타납니다. 옛 읍성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이 있었고, 성 안에는 경주를 다스리는 관청과 주민 생활공간이 자리했습니다.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원된 동문 향일문과 성벽입니다.
하지만 현재 보이는 성곽 전체가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남아 있던 것은 아닙니다. 도시가 커지고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읍성 대부분이 사라졌고, 발굴조사와 기록을 토대로 일부 성벽과 성문이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주읍성은 단순히 옛 성을 보는 곳이 아닙니다. 신라 왕경 → 고려·조선의 읍성도시 → 근현대 도시 → 다시 복원된 역사공간 이라는 경주의 긴 변화를 한자리에서 읽는 곳입니다.
향일문은
현재 복원된 경주읍성의 동문입니다. 이름처럼 동쪽을 향하는 문이라는 점을 확인해보세요. 왕경과 읍성의 차이 월성과 대릉원을 본 뒤 이곳에 오면 더 재미있습니다. 왕이 사는 수도와 지방 행정도시는 공간부터 달랐습니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성벽 지금 보는 성벽에는 현대에 복원된 부분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과 복원된 것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 안과 성 밖
성벽 위에 올라가면 도시를 둘러싼 ‘경계’라는 개념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향일문과 정비 성벽은 2018년 공개된 복원 구간으로 소개됩니다. 옛 전체 읍성을 한 바퀴 걷는 코스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1745년 중수 모습과 현대 도심의 경계가 어떻게 겹치는지 안내도에서 읽습니다.
꼭 해볼 것
- 향일문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 성벽 위에서 성 안과 밖의 풍경을 비교해보세요.
- 오래된 돌처럼 보이는 부분과 새롭게 복원된 부분을 찾아보세요.
다른 포인트부터 탐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