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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성지 — 숲속 교우촌과 작은 신학교, 순교자의 묘소를 걷다 심층 탐험
“관람 포인트로 깊이 들여다보기”
3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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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할 사이트 3곳
아래 순서는 추천 동선이에요. 가까운 곳·원하는 곳부터 자유롭게 방문해 스탬프를 모으면 됩니다.
- 1재현 초가 — 방 두 칸짜리 집이 어떻게 신학교가 되었을까?심층
“1850년 배티 교우촌에서 다블뤼 신부는 작은 초가를 신학교 건물로 사용했습니다. 이 집은 신학생이 공부하는 곳이면서 성당이었고, 사제가 머무는 곳이었으며, 신학생들이 지내는 숙소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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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최양업 신부 박물관 — 한 사람이 왜 여러 고장을 계속 걸어야 했을까?심층“최양업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입니다. 1853년부터 약 3년 동안 배티 교우촌을 사목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배티에만 머무르지는 않았습니다.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교우들을 찾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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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교자 묘소 —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묘도 왜 지켜야 할까?심층“배티와 인근 골짜기에는 박해 시대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묘소가 남아 있습니다. 복자 오반지 바오로처럼 이름과 삶의 일부가 전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무명 순교자 6인 묘**와 **무명 순교자 14인 묘**에서는 개개인의 이름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